"우리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에요"

입력 2024-02-20 17:42   수정 2024-02-28 16:57


지난 70여 년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비난 일색이었다. 종신집권을 시도한 독재자, 미제(美帝)의 꼭두각시, 한강대교를 부수고 도망간 ‘런승만’ 등이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었다.

독립영화 ‘건국전쟁’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강하게 반기를 든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19일 현재 75만 명을 동원하며 정치 다큐멘터리 분야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입니다’(2017년·185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길위에 김대중’(상영 중·12만4390명), ‘문재인입니다’(2023년·11만6959명) 등의 기록을 훌쩍 넘어섰다.

영화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58)은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 것은) 이승만에 대한 사실 왜곡의 충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저도 386세대로서 이승만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배우며 자랐는데 그동안 학계와 미디어가 전한 내용이 사실과 많이 달랐다는 점 때문에 관객이 몰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이승만을 떠받드는 영화였다면 이런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월 항쟁 시위했던 운동권 출신
김 감독은 1965년생으로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동료들과 함께 머리띠를 두르고 신촌을 누비기도 했다. 그는 “데모하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못 받던 시절”이라며 “주사파들이 쓴 책을 돌려봤는데 ‘북한이 민족적 정통성을 유지·발전하는 동안 남한은 이승만에 의해 미국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내용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서강대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스물여덟 살부터 영화 카메라를 들었는데 어느 날 제보를 하나 받았다. 북한으로 송환된 남편을 기다리는 루마니아 여성들이 있다는 것. 동유럽에 보내진 북한의 전쟁고아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2020)이 그렇게 16년의 취재 끝에 완성됐다.

북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가운데 1995년 방북한 한 목사의 증언이 의미심장했다. 목사는 ‘이승만 정부를 타도하자’는 현수막이 북한 곳곳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5년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흘렀는데도 북한의 증오가 남아 있던 셈이다.

“북한이 여전히 ‘이승만 죽이기’에 혈안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심지어 제가 대학 시절 배운 논리와 너무 비슷했죠. 이후 3년6개월 동안 이승만의 행적을 연구한 결과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가 이승만 없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승만 업적은 왜 침묵했나”
영화가 지목한 이승만의 핵심 공(功)은 자유다. 토지개혁으로 경제적 자유를, 여성 투표권 보장을 통해 정치적 자유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국민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도 영화가 부각하는 업적 중 하나다. 과(過)를 축소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김 감독은 “지금껏 비판 일색의 이승만 담론에 대한 균형을 맞춘 결과”라며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이승만의 잘못만 키우고, 업적에는 침묵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속편 ‘건국전쟁 2’를 구상하고 있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의 삶을 다룰 계획이다. 김 감독은 “‘건국전쟁’에서 이승만에 대한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걷어내는 데 주력했다면, 속편에는 모범적인 활동과 선행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담을 계획”이라고 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 워싱턴DC 한국전쟁기념비 비문에 이런 말이 있죠. 지금은 우리가 거저 얻은 것으로 생각하는 자유의 배경에는 이승만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전쟁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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